애플 등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는 LG이노텍이 2030년까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하기 위해 대규모 재생에너지 구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글로벌 고객사 요구에 직면해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지만, 열악한 여건 탓에 많은 국내외 기업들이 한국 사업장에서 RE100을 실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0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LG이노텍은 지난해 말 국내 태양광 발전소 기업인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와 84메가와트(㎿)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LG이노텍이 연간 구매하는 재생에너지는 약 100기가와트시(GWh)로, 2만4000여가구가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두 회사 간 계약 기간은 20년이다. 이처럼 대규모로 장기간 REC 계약을 체결하기는 국내 처음이다.
REC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해 발행되는 증서로, 이를 구매하면 친환경 전기 사용 및 온실가스 배출 감축 인증을 받을 수 있다. LG이노텍은 이번 계약으로 온실가스 감축량이 500만t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LG이노텍은 2030년까지 국내외 모든 사업장의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구미·마곡·파주 사업장에 자가발전 태양광 설비를 구축하고, 전력 공급 사업자와 재생에너지를 직거래하는 직접전력구매계약(PPA)도 맺었다. 그 결과 2022년 기준, 전력 사용량의 22%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했다.
LG이노텍이 재생에너지 사용에 적극적인 건 주요 글로벌 고객사들의 영향이 크다. 애플은 협력사에 글로벌 RE100 이니셔티브에 가입해 2030년에는 100% 재생에너지만 사용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RE100 달성을 위해 최근 기업들은 REC 구입에 이어 PPA도 체결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현대자동차가 2025년까지 울산공장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가운데 64㎿를 태양광으로 조달받는 내용의 PPA를, 같은 해 12월엔 기아가 219㎿ 규모의 PPA를 현대건설과 체결했다.
전문가들은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수출 지향적이고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제조업 중심의 한국 산업구조를 고려하면 앞으로도 재생에너지 수요는 계속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롯데케미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HD현대사이트솔루션, LS일렉트릭 등 국내 36개 기업이 RE100 캠페인에 참여 중이다.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여건은 척박한 상황이다. 국제 비영리 환경단체인 더 클라이밋그룹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가 지난 7일 발표한 ‘RE100 2023 연례보고서’를 보면 RE100 가입 기업의 한국에서의 재생에너지 사용률은 9%로, 독일(89%), 영국(88%), 미국(77%)은 물론 중국(50%)과 일본(25%)보다 현저히 낮다.
실제 한국에서 사업 중인 국내외 RE100 가입 기업(164곳)의 40%인 66곳은 한국이 다른 지역보다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데 어렵다고 밝혔다. 이는 대만(33%), 싱가포르(27%), 일본(24%)보다 높은 수치다.
한국에서 사업하는 RE100 참여 기업은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수단이 부족하다며 높은 비용과 적은 공급을 한계점으로 꼽았다. RE100 주관기관인 더 클라이밋그룹은 “기업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안정적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국가 재생에너지 목표를 상향하는 등 일관된 정책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